딴지의정보방


서프라이즈에서 방송한

언빌리버블 스토리


1908년 3월23일

미국샌프란시스코 차에서 내래는 남자에게

총구를 겨누는 한 동양인

권총이 불발되면서 계획실패


총을 쏘려던 동양인 남자는 24살의

한국인청년 전명운이며


암살하려던 남자는 

미국인인 스티븐스


1883년 경성에서 태어난 전명운은

1903년 미국으로 건너와

사탕수수농장 방직공장드에서

노동자로 힘겹게 살아갑니다.



그러던 1905년 일본이 강제로 을사늑약을 채결하고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자



안창호가 주측이 되어 조직한

미국의 항일운동단체공립협회에 가입했고

어려운형편속에서도 수입의 대부분을 독립운동자금에 보탰습니다.



그런데 1908년 3월 21일

샌프란시스코 언론에 실린 한 미국인의 인터뷰를 보고 분노합니다.



그 미국인이 스티븐스

을사조약은 조선인을 위한 당연한 조치입니다.

일본이 대한제국을 보호해주고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일입니까?


스티븐스는 우리나를 강제 합병하기전부터

일본 외무성에서 파견한 외무고문으로



대한제국에 대한 침략을 정당화하고자 하는 일본을 도와

평소에도 외신기자들에게

일본이 대한제국을 돕고있다는 망언을 쏟아냈습니다.



하지만 합병에 대해 조선인들은 

반기지 않을텐데요 라는 기자의 질문에


스티븐스는 천만에요. 조선인들은

독립할 자격이 없는 무지한 민족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일본의 식민정치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1908년 샌프란시스코 방문당시

미계한 조신인들에게는 일본의 식민지배가

꼭 필요하다는 망발까지했으며

이것이 언론에 대서 특필된것


이에 공립협회측에서 스티븐스에게

정식으로 항의하고자 당시 그가 묵고있던 패어먼트호텔을 찾아가지만


대체 내말이 뭐가 틀렸다는겁니까?

대한제국에 이완용과 같은 충신이 있고

이토 히로부미와 같은 통감이 있으니

오히려 행복한 일 아니오?

라고 망언을해서 폭행사건으로 이어집니다.

공립협회에서는 결국 스티븐스를 암살하기로했고

그일을 하겠다고 나선사람이 전명운이었다.

3월23일 스티븐스가 페리선착장을 거쳐

워싱턴으로 향한다는 소식에

그곳에서 그를 암살하기로 합니다.

3월 23일 9시30분

스티븐스를 향해 총을 쏘지만 권총이 불발되자

총으로 그의 얼굴을 가격하는데

어디선가 날라온 총알에 어깨를 맞아 작전에 실패하는듯하지만

그후 스티븐스가 총을 맞고 쓰러집니다.



스티븐스를 암살한 남자는 32살의 장인환이었습니다.

거사2일전

신문기사를 보고 격분한 장인환은

평양태생의 고아로 1906년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그는

전명훈과 마찬가지로 철도역 역원등에서 어렵게 생계를 이어가면서

미국내 또 다른 독립운동 단체

대동보국회회원으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의지를 불태우고 있었습니다.



이에 역시나 스티븐스를 암살하고자 기회를 엿보던 장인환은

페리선착장까지 가게되었고

기회가 왔을때

전명운을 발견하고 전명운이 실패하자

총을 쏘는데

한발이 빗나가면서 전명운의 어깨를 스쳤고

나머지 두발이 스티븐스에게 명중했다

결국 병원에 이동해서 수술을했지만

이틀만에 사망합니다.



전명훈과 장인환은 조국을 위해 반드시 해야할일이었다며

당당함을 잃지 않았고

그들의 용기에 감동한 미국교민들이

돈을 모아서 그들의 변호사비용으로

8568.42 현재 우리돈으로 3억이넘는돈을 모금하고

전명운은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고

장인환은 25년형을 선고받는다.



이 사건은 해외에 거주하는 한국인 최조의 의거

무엇보다 전세계에 대한제국의 상황을 알리는 계기가 됩니다.

암살현장을 목격한 미국인 여성이

그들의 애국정신을 찬양하는 인터뷰를 하고

몇몇언론에서는 일본의 한국침략을 규탄하는 기사가 등장했다.



또한 한반도에서 1년후 안중근의

이토히로부미암살로 이어지는등

항일무력운동을 촉구하는계기가 되었습니다.



1924년 장인환이 11년만에 가석방되면서

두사람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다시만나게됩니다.


그후, 장인환은 고향으로 돌아와 고아원을 설립했지만

일본의 지속적인 감시와 괴롭힘으로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고

우울증에 시달리다 1930년 스스로 생을 마감함


전명운은 러시아로 망명해

독립운동을 이어갔지만

아내와 아들을 잇달아 잃고 평생을 어렵게 살다가

독립후에도 조국에 돌아오지못하고

1947년 숨을 거두고 맙니다.



조국을 위해 한날한시 한 미국인을 암살하려한

전명운과 장인환 1962년 대한민국은 건국훈장 대통령장 추서했으며

현재 이들은 국립현충원 애국지사묘역에 잠들어 있습니다.


-스티븐스 암살직후 발표한 장인환의 성명서

일본은 조선인에게 온갖 잔인한 일을 자행해왔다

스티븐스로 인해 더 많은 동포가 죽게될것이다.

그자를 죽이고 나도 죽는다면,

그것은 우리나라의 영광이요

우리 국민의 행복이 될것이다